기록생활

튀르키예 여행 회고(1)

freshberry95 2023. 9. 6. 16:38

올해 5월 남편과는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비록 4개월전의 여행 기억이지만, 그때 느꼈던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서

회고 기록을 작성해 보려고 한다.

 

남편과 나 모두 해외 여행을 마음대로 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기도 까다로웠다.

마침 잘 맞는 날짜가 생겨서 5월 4째주에 다녀온 기록이다.

 

왜 튀르키예를 선택했는지는 아주 분명했다. 

1. 아시아와 유럽 모든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국가 

(튀르키예는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시아, 중동, 유럽의 모든 문화가 걸쳐져 있다.)

2. 환율을 고려했을때 튀르키예 화폐가 몹시 저평가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담이 덜했다. 

(당시에는 1리라에 70원이었으나, 9월 6일 기준 45~6원으로 더 떨어졌다;;)

3. 다른 사람들이 흔히가는 여행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아무도 모르는 오지 국가를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4. 기후와 날씨를 고려했을때 5월에 튀르키예는 여행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비록 4박 5일의 짧은 일정이었으나 나름대로 그 나라의 정취를 잘 느끼고 왔다. 

우리는 튀르키예의 어느 도시를 갈까 고민했다. 

파묵 칼레와 이스탄불을 고민했는데 파묵칼레는 관광지로서 하루 정도 일정을 잡고 다녀올 곳 이지

4박 5일을 길게 있을 도시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스탄불에서 파묵칼레를 다녀오는 일정도 고민했는데

국내선 비행기를 한번 더 타야해서 이동 시간이 짧은 여행에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4박 5일 내내 이스탄불에만 있기로 결정했다. 해외 자유 여행을 해본적이 거의 없어서 

많이 걱정이되었다. 숙소부터 항공권, 코스까지 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숙소과 항공권만 여행사를 통해서 대행 예약을 했다. 그 안에서 관광하는 것은 

따로 투어를 신청해서 다녔다. (투어를 신청한 것은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우리는 이스탄불의 구시가지에서 주로 머물렀다. 우리나라로 비교하자면 명동같은 곳에서

4박 5일을 보냈기 때문에 숙소비용이 엄청 저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항공권 및 숙소를 여행사를 통해서 대행했기 때문에 공항에서 숙소까지 픽업 서비스가 있었다.

픽업 서비스가 없었으면 처음 가보는 나라의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잘한 선택인것 같다. 


튀르키예 1일차

튀르키예와 우리나라는 거의 시차가 6시간 정도 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시차 적응이 필요했다.

(우리나라보다 6시간 정도가 더 느리다.) 

우리나라에서 점심 정도의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을때는 우리나라 시간을 따지면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이스탄불에 도착했을때는 아직 오후 4시밖에 되지 않은 밝은 시간이었다.

* 비행 거리는 약 10시간이었는데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다. 기내식을 한식으로 선택하지 않은 것은 뒤늦게 생각했지만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래서 남편이랑 바꿔먹었다.(미안) 기내식은 두번 먹었고, 마지막 내릴때는 간식도 나왔다.

아시아나 기내식
이스탄불 공항

이스탄불 공항은 진짜 엄~~청 크다. 이렇게 큰데 또 새로 짓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인천공항 보다 

더 큰것 같다. 그래서 입국 수속하는 곳까지 10분은 넘게 걸었다. 

너무 피곤했지만 열심히 걸어서 수속까지 잘 마치고, 짐도 찾고 픽업 기사를 찾았다.

픽업 차량을 타고 도착한 숙소는 공항에서 30분 이상 떨어져 있었다. 

(이스탄불에는 딱히 팁 문화는 없지만, 팁 박스가 있어서 픽업 기사에게 주었다.)

이스탄불 시르케지 머큐어 호텔

숙소에 도착하니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웬 풍선,,(신혼 여행 인줄 알았나..)

숙소는 작고 아담했고 뷰도 없었지만, 직원들이 몹시 친절했다. 

호텔 컨시어지는 영어도 유창했고 어딜 가야할지 관광지도, 그리고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마주칠때마다 넘 친절하고 말을 걸려고 하기에 조금 부담 스러웠지만 지나고 보니

튀르키예 사람들이 유난히 친절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나갈 힘도 없었고 다음날 일찍 투어를 신청했기 때문에 숙소에서 그냥 쉬었다. 

튀르키예 2일차 (돌마바흐체 궁전, 아야소피아 성당)

2일차에는 마이리얼트립에서 신청한 튀르키예 현지인 가이드와 단체 투어를 했다. 

투어 시작 전에 아침 조식 먹고 숙소 앞에 있는 atm에서 환전을 했다. 

대부분의 환전은 트레블페이를 이용해서 했고, 앞으로도 해외여행을 가면 트레블 페이로

할 생각이다. 

호텔 조식(첫날 먹고 안먹었다.)

그리고 돌마바흐체 시계탑 앞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기차를 제대로 탈 수 있을지 걱정이되어서

너무 일찍 나갔다. 트램을 타기 위해서 카드를 구매하고 (우리나라 티머니랑 똑같다.) 

충전도 시켰다. (근데 지하철이 아니라 지상철에 펜스를 넘기가 쉬워서 무임승차가 엄청 많을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도 많다고 했다.) 

지상철 노선이 복잡하지 않고 구간이 거의 하나라서 어렵지 않게 트램을 타고 신시가지 쪽으로 넘어갔다. 

(우리나라 서울 기차 노선에 단련되서 그런가 엄청 단순했다.)

갈라타 다리를 넘어서 기차가 미친 듯이 달리는데 치이는 사람이 없다는게 너무 신기할 정도. 

 

그래서 돌마바흐체 궁전 시계탑 앞에 도착을 했고 현지인 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현지인 가이드로 만났던 엘베다님은 우리나라 남자와 만나서 결혼도 하고 한국에 너무나도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한국말이 진짜 왠만한 한국 사람보다 더 풍부하고 다양한 어휘를 구사할 수 있었다. 

10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해서 이정도로 대화를 할 수 있다니, 영어를 10년이상 공부한 나는 뭐가 되는 걸까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스만 제국시절에 국가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서 만든 온갖 풍요로운 것들이

잔뜩 모여져 있는 궁궐이다. 엄청난 예산과 비용을 사용했고 바로 옆 보스포러스 해협이 있었기 때문에

배로도 궁궐에 들어올 수 있다. 실제로 국가 행사나 시상식 등을 통해서 유명 셀렙들이 배를 타고 등장한다고 하니 

멋지기만 하다.

돌마바흐체라는 이름은 돌마= 돌 / 바흐체 = 채우다 (아마도?) 여튼 돌로 가득 채운 궁전이라는 뜻이다. 

정말 대리석과 같은 돌로 지었기 때문. 내부는 아주 화려하고, 여러 주변 국가들로 부터 받은 선물들로 

가득차있다. 오스만 제국의 문양을 볼 수 있고, 내부에서는 돔 처럼 보이기 위해서 천장을 정교하게

그린 그림들이 있다. (실제로 돈이 없어서 돔으로 만들지 못했다.)

또한 술탄의 후궁들이 모여살던 하렘이 있는데, 우리가 하렘에 대해서 외설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하렘은 그런 곳이 아니다. 황후를 비롯한 후궁들이 모여살았고 교육도 받았다. 

그저 남녀의 생활반경을 구분하고 엄격하게 만들기 위해서 만든 공간일 뿐이다.

돌마바흐체 궁전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외부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스만 국가의 엄청난 역사의 일부를 보여주는 유적지 중의 하나다. 

이 궁전을 짓기 위해 끌어다쓴 빚을 튀르키예 정부가 설립된 이후까지 갚았다고 하니 엄청날 수 밖에 없다. 

(참고로 터키언어는 오스만 제국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터키 공화국의 창시자 무스타파 케말 이후

아랍글자로 표기하던 오스만튀르크 언어를 로마자로 바꾸었다. 튀르키예 무슬림들은 꾸란을 배우다 보니 아랍언어를 쓰고 

읽을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읽고 발음할 줄은 안다.)

돌마바흐체 보스포러스 해협

현재 튀르키예 대통령 에르도안 이전의 터키는 세속적인 무슬림 국가로 이슬람을 국교로 지정하지 않았고

이슬람의 영향권에 있지만,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했다. 그래서 여러 이슬람 모스코와 같은 유적지를

박물관으로 지정하여 관광할 수 있었고, 여성들도 히잡을 의무적으로 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튀르키예의 여성들은 자기 신념에 따라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히잡을 쓰는 여성이 있고 

쓰지 않는 여성이 있다.) 그러나 에르도안의 집권이후 이전의 무슬림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유적들이 사원으로 전환된 경우가 있다.

(박물관으로 지정되어있었을때는 입장료를 받았으나,

사원으로 전환됨에 따라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여러가지를 고려해보았을때 다시금 박물관으로 전환해서

수익을 유지하고 관리하는게 여러모로 더 좋지 않을까?)

 

이어서 방문한 곳은 아야소피아 성당이다.

(아야 소피아에 가기전에 100년된 케밥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한번에 몰아서 작성 하겠음)

아야 소피아 성당은 트램을 타고 구시가지쪽으로 이동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싶이 원래는 콘스탄티노플의 성당이었으나, 오스만제국의 점령으로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곳곳에서 예수,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입장할때는 여성들은 머리를 가려야하기 때문에 스카프, 혹은 앞에서 판매하는 일회용 스카프를 구입할 수 있다.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나.

우리가 입장하려고 했던 시간에는 기도를 드리는 시간과 겹쳐서 사람이 아주 많았으나,

다행이도 무슬림들과 비무슬림들을 구분해서 들여보내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인 가이드님 덕분에 빠르게 입장이 가능했다. 

 

아야소피아 성당 내부는 정말 너무 크고 화려했다. 그 당시 이 성당을 짓기 위해서 로마의 황제들이

몇만명의 시민들을 닦달하고, 포로들에게는 제대로 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하였는데 

그래서 인지 몇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특히 건축양식도 독특하지만, 성당 내부의 돌벽에서 화산재를 사용하여 건물을 세운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런 방법 덕분에 불에 타지도 않는다고 한다. 1500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이렇게 거대한

돔 형식의 건물이 유지되고 만들어져 있는지 신기하고 독특했다. 

 

(지친 나머지, 여기까지 기억이 나는대로 작성하고 이어서 포스팅을 해보겠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