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3. 10:14ㆍ육아생활/임신기간
임신이 끝났다..
길고 길다면 수개월의 임신 기간이 끝나고 학수고대 했던 시간이 왔다.
아기를 낳고 벌써 일주일이 지난 오늘 (2월 13일 화요일)
이제서야 글을 쓰는 이유는 시간도 없었지만, 몸이 정말 말도 안되게 아팟는데 이제서야
회복이 되기 때문이다. 아기 낳기 하루 전날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기억이 생생하다.
마지막 만찬인 kfc치킨을 먹었고, 하루종일 진통으로 배가 아팠다.
역아 제왕절개 였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어 출산하려고 하였으나, 아기는 거짓말 처럼
나오기 하루전 나가고 싶다고 시동을 걸었고
결국 자기가 원하던 시간에 일찍 나와버렸다. 우리가 원했던 시간은 아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려나
아기는 나오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기 만나기 하루전 D-1
24년 2월 4일 일요일 하루종일 배가 아프기도 했다가 몇분 지나면 괜찮아졌다가 했다.
수축이 있었다. 진통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했다. 처음이라 무슨 고통인지 몰랐다.
그냥 화장실 가고 싶은 변의 처럼 아팠고, 그 아픔이 지나가면 너무나도 멀쩡해졌다.
밥도 먹었고 빨래도 왕창했다. 혹시 몰라서 출산 가방도 멀쩡히 싸놓았다.
그만큼 버틸만은 했다고 할까? 그럼에도 점점 주기는 짧아졌고 아픔도 조금씩 심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남편의 머리를 뜯거나, 소리를 지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닌가 싶어 엄마에게 전화를 했는데, 엄마도 그랬단다. 딱 그정도 아픔이었는데
몇시간 뒤에 내가 나와서 깜짝 놀랬다고 했다.
병원에 전화했더니 초산이라 아직 멀었다며 오지 말라고 했다. (이슬도 양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혹시 엄마 닮아서 빨리 나올까 싶어 무작정 짐싸서 병원으로 갔다.
집을 나설때에는 할머니가 해주신 말이 떠올라 울컥했다.
옛날에 아이를 낳을때 이 문을, 이 신발을 다시 신고 나설 수 있을지 걱정하며 아이를 낳으러
갔다고 하니, 왠지 이 고도 발달된 의술 환경에서도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는지 (놀랍게도 아직까지
제왕절개의 모성사망율이 더 높다.)
한편으로는 우리집에 다시 올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집밖을 나섰던거 같다.
병원에 갔더니 제왕 절개라면 느끼지 않을 고통을 많이 느꼈다.
수축과 태동은 계속 있었고, 진통이 맞았던거 같다.
응급으로 제왕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혹시 몰라서 여러가지를 다 꼽고 테스트 했다.
내진은 아팠는데 후기에 보면 정말 아프다고 하던데 그정도는 아니었다. 불쾌한 느낌이 주로 들고
몸을 반으로 가르려고 하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궁문은 1센치 정도가 열려있었다고 했다.
하루종일 앓았는데 겨우 1센치 라니.. 충격.. 그러면 10센치 까지 열리려면 얼마나 아파야 되는 걸까...
제왕절개라 다행이다... 싶었다.
항생제 테스트는 그냥 아프지도 않았다. 체했을때 손따는 느낌 정도로 아프지 않았다.
대망의 고통은 소변줄 꼽기.. 정말 악 소리 나게 아팠다.
원래 제왕절개 하면 하반신 마취를 하고 꼽아주어서 안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응급 제왕을 할 수 도 있다며 미리 꼽았는데, 약간은 잘못된 선택인거 같았다.
(왜냐면 나는 수축 억제제를 맞고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진통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변줄을 꼽는데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아픔은 잠깐 끝나긴 했지만, 이물감은 꽤나 오래갔는데
나이가 들어 병상에 누워 소변줄을 꼽고 지내는 노쇠한 나의 이미지가 떠올라 건강히 살다가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 바늘을 이어서 꼽았는데 제일 두꺼운 바늘인데 손목이 부어서 두번을 찔렀다 빼었다. 수술 바늘이 너무
크고 아팠지만 그래도 참을 만 했다.
결국 수술을 밤에는 하지 않고 다음날 주치의 배덕호 선생님이 오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새벽 내내 분만을 하려하는 산모들이 많았기 때문에 잠을 자거나 할 수 는 없었다.
그리고 아침 6시쯤 되니 유도 분만 산모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시장통 같았다.
유난히 우리 아기가 나오던 주에 아이 낳는 산모들이 많았다. (설 전이라 그런가 싶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9시에 오셨고, 바로 낳자고 하셨다. 14시까지 버틸 힘이 없이 지쳐버렸기 때문에
시간을 고집하거나 할 힘도 없었다. 배도 조금씩 아프긴 했지만, 이것 저것 내 몸에 꽂아놓은 것들
때문에 기운도 없었다. 밤새 긴장했다. 임신 기간 동안 아기를 만날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 순간이 다가오니 난 아무 준비도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기의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니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엄청난 무게와 두려움이 수술에 대한 두려움
보다 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다가올 시간을 피할 길은 없었다..
아기 만나는 날 D-DAY
결국 걸어서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대는 춥고 좁았다. 몸이 육중해져서 떨어질 것 같았다.
새우자세로 등을 말아 척추 마취를 해야하는데 나는 몸이 무거웠고 뻗뻗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뭐.' 하는 생각을 하면서 노력했다.
척추에 꽂는 주사는 아프지 않았으나,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는 무력한 감각이 생긴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을 뿐이었다.
척추에 놓는 주사는 아프지 않았으나 다리가 따뜻해 지면서 무력해 지는 것에 등골이 서늘했다.
그래도 조금은 움직일 수 있었는데, 그 감각 조차도 점점 사라졌다.
누가 나를 만지는 구나 정도의 느낌은 남아 있다.
수술시작전에 선생님 들어오시고 ' 자 시작 합시다.' 하는 말씀에 뭔가 우당탕탕 시작되었다.
몸이 들썩인다고들 하던데, 들썩이긴 했다. 여러번 큰 부황으로 배와 가슴팍을 붕 뜨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들어와서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남편을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아기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약간의 두려움과 서럽고 아팠던 지난 하루가 생각이 나서 미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남편도 내가 울고 있으니 별말 하지 않았고,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얼어있던거 같았다.
'9시 37분 아기 나왔습니다.~!' 하는 말씀에 남편은 탯줄을 자르러 일어났다. (생각보다 너무 질기고
두꺼운 고무 호스 같아서 당황 했다고 했다.)
아기가 나왔고 남편이 먼저 봤다. 그리고 내 옆에 데려다 주었다.
아기를 처음 본 순간 너무나도 충격을 먹었다. 일단 너무 작았고, 쭈글쭈글 빨갛고
정말 ET같은 외계인 같았다. 무서웠다. 무서운데 자꾸 얼굴 가까이 아기를 가져다주어서
마음속으로는 덜덜 떨고 있었는데 그저 눈물이 나와서 다들 감격한 내 모습만을
보았을 것이다. 정말 내 마음속에는 그때의 충격이 잊혀지지 않는다.
작고 빨간 외계인 같은 내 아기. 나를 두렵게 만들던 존재
아기를 보여주시고 그리고 잠에 들게 해주겠다고 하셨다. 남편은 나갔다.
뭔가 몽롱한 느낌이 들면서 푹 자야지 하는 안도된 마음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너무 바로 깨버렸다. 아직 후처치가 끝나지 않았고, 깨어 있는게 맞나 싶어서
말을 막 했더니 내가 꺴다는 것을 아셨나보다. 거의 마무리 되었다고 하셨다.
10분 정도는 후처치 하는 시간에 의식이 있었다. 다만 완전한 의식은 아니고 아주 피곤한 상태의 의식.
잠이 쏟아지기 직전.
주치의 선생님께 고생하셨다고 말씀도 드렸던거 같고, 선생님도 고생했다고 하신거 같다.
이제 나를 침대로 들고 옮겨야하는데 내가 너무 무거워져서 옮길 수 있나 의구심이 들었다.
처치실에 이동해서 혈압도 재고, 심박수도 보고 1시간 안되게 있었는데 옆자리 환자들은 계속
바뀌었다. 엄청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2개나 배위에 얹었다.
나중에 모래주머니를 뺄때 남편이 들어보니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상태 보시더니 아기가 이쁘다고 해주셨다.
그말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사실 그때까지는 마취가 풀리지 않아서 아픔이 별로 없었고
그냥 불편함만 있었다. 그래도 발 정도는 움직일 수 있어서 계속 까딱까딱 했다.
입원실로 옮겨졌고, 마취가 풀리니 정말 너무너무 아팠다. 페인퓨저에 무통까지 다 줄줄이 맞고 있었는데
점점 통증이 생기더니 20분 정도는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누가 나를 찌르는가 하는 정도로
아파서 침대 가장자리를 잡고 참고 견뎠다.
그 시간이 지나니 좀 나아졌고 모래 주머니 빼고 진통제 항생제 맞고 하니 참을만 해졌다.
결정적으로 잠이 쏟아져서 아픔을 이겨버렸다. 너무 피곤해서 목마름도 잊었고 아픔도 잊혀졌다.
아무래도 전날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수술을 해서 그런지
잠을 너무 자고 싶었다. 그리고 잠시 티비로 본 아기의 얼굴. 귀여웠다. ㅎ
아픔도 좀 사라질 만큼 귀엽고 신기했다.
남편도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같이 일찍 잠들었다. 그렇게 입원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남편이 없었다면 너무나도 힘들었을 것이다.
나를 부축해주고 옆에서 보살펴주고 위로해주는 내편이 있었기 때문에
별거 아닌듯이 수술대위에 올라 아기를 낳았다.
소중하고 예쁜 아기를 얻게 해준 내편에게 참으로 고마운 날들이었다.
남편이 없이 산욕기를 보내는 산모가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큰 산처럼 내 옆을 지켜주던 남편도 처음이라 두려움도 있었을 텐데
의연하게 있어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그외에도 병원의 모든 선생님, 간호사샘들 등등 다 너무 친절해서 좋았다. 아마
산후의 예민한 산모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신거 같다.
덕분에 잘 나아서 퇴원하게 되었다.
메디아이여성병원 특실 후기
1인실로 갈까 하다가 특실로 간 이유는 일단 남편도 쉴 수 있는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실이 넓기 때문에 남편도 이불 깔고 넓게 편하게 잤다.
나도 움직이기 편했다. 쇼파도 무척이다 푹신해서 좋았다.
남편이 머리도 감겨줄 수 있다. ㅎ 덕분에 호강.. 비록 손길은 투박했지만 마음이 고마웠다.
수건만 챙겨가면 된다. 나머지는 다 있었다. (드라이기 까지)
그외 식사도 맛있었고, 여러모로 다 좋았다.
특히 보호자식도 신청하면 (한끼 5000원) 괜찮은 가격에 같이 식사할 수 있어서 괜찮았다.
남편은 맛있다고 다 긁어먹었다. ㅎㅎ
수유는 제왕절개 후 3일차 부터 불러주시는데 사실 실제로 수유는 거의 못하고 아기 만나고
면회하는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모유가 잘 안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루에 3번 아기를 보러가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였다. 나는 그래도 회복이 좀 빨랏는지 모르겠는데
4일차부터는 주사 진통제도 맞지 않고 버텨보았다. (무통이랑 페인퓨저도 제거함)
그래도 살만했으나 앉고 일어설때는 역시나 엄청난 통증이 있었다.
(이글을 쓰는 수술 일주일 차는 이제 멀쩡하다.) 아기 보러가는 일이 병원 생활에서 최고의
낙이자 기쁨이었다.
아기가 무사히 내품에 건강히 와주어 너무나도 좋다. 이제 조리원으로 가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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